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학동마을 삼형제

거제관광개발공사 2020. 6. 9. 13:21

[2020년 거제 스토리텔링 최우수상 심수영 씨 작품]

 

학동마을 삼형제

 

거제시 동부면 학동마을 전경

1.

학동마을의 지형은 학이 바다에 있는 먹이를 보고 나는 형태라 하여 '학동마을'이라 구전되어 오고 있다. 노자산과 가라산이 양쪽 날개를 펴고 바다를 향해 날고 있는 학을 닮아있다. 산 아래 뻗어있는 학동 뒷산이 학의 머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학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때는 조선시대 날 좋은 어느 날, 학동 앞바다에서 수영을 마친 삼 형제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파도는 잔잔했고 햇살도 따스했다. 하지만 날씨와 달리 첫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이 아름다운 경치도 못 본다 생각하니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둘째가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말씀을 따라야죠.”

형제의 아버지는 학동마을의 어부였다. 자식들에게도 그 기술을 가르쳐 주었지만, 고기잡이 일이라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매년 풍어를 기대할 수도 없고 바람에 맞서 싸워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한양에 올라가서 기술을 배워오라고 시켰다. 내일이 바로 삼 형제가 고향을 떠나는 날이었다.

막내 역시 우울한 얼굴로 먼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첫째가 다시 말했다.

갈증이 나구나. 김 영감네 수박밭에 가서 수박이나 깨 먹자꾸나.”

둘째가 알겠다고 대답하며 일어서려는데 막내가 말렸다.

형님들, 어린애들도 아니고 그런 짓은 하지 맙시다. 연세도 많은 김 영감님이 힘들게 농사지으신 것 아닙니까?”

첫째가 혀를 차며 막내를 나무랐다.

그저 한두 개만 집어 먹자는 거다. 아마 티도 안 날 것이야. 안그러냐 둘째야?”

둘째는 첫째의 눈치를 보며 막내를 타일렀다.

그래 막내야. 이제 마지막 수박 서리 아니겠냐? 같이 가서 갈증을 식히자꾸나.”

형님들이나 가서 실컷 드십시오. 저는 들를 때가 있습니다.”

첫째가 막내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놀려댔다.

알겠습니다, 샌님 나으리. 근데 요즘 어디로 계속 사라지는 게냐? 어디 몰래 훔쳐둔 보물이라도 있는 게냐? 수상하구나.”

, 수상은 뭐가 수상하단 말입니까? 얼른 먼저들 가십시오.”

형님들을 향해 한마디 쏘아붙이고 막내는 몽돌이 깔린 바닷가로 달려갔다. 나머지 둘은 그런 막내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수박밭으로 향했다.

막내는 몽돌해변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한가로운 해변에 깔린 검고 고운 몽돌들이 햇빛에 반짝여 윤이 났다. 몽돌은 마치 학의 알과 같아 학동은 예로부터 풍수지리학상으로 비학포란지형(학이 알을 품은 형국)의 길지(吉地)로 알려졌다.

막내가 하릴없이 몽돌을 만지작거리는데 뒤에서 치맛자락이 흩날리는 모습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막내는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낭자였다.

이제 나오시는 것이요. 낭자.”

낭자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아름다워 막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사람은 몽돌해변에서 처음 만났다. 막내는 종종 해변가를 산책하곤 했는데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분 날이 있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였는데 저 멀리 아리따운 낭자가 바람에 비틀거리고 있었다.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은 것으로 봐서 귀한 집 자제인 듯싶었다.

괜찮으십니까? 이리로 오시지요.”

막내가 달려가 낭자를 바람이 약한 곳으로 안내했다. 막내는 학동마을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낭자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형님들 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만 정이 들어 버렸다. 둘은 자주 바닷가에서 만났다. 하지만 이제 오늘이 지나면 한동안 보지 못할 거였다. 막내가 주저하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낭자, 아무래도 한동안 보지 못할 것 같소. 한양에 가서 일 년 동안 기술을 배워 와야 하오.”

낭자가 슬픈 눈으로 막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기다리겠습니다.”

막내는 낭자의 두 손을 잡았다.

기술을 배우고 내려오면 혼례를 올립시다.”

그날 몽돌해변에서 두 사람은 바다를 바라보며 약속했다.

 

2.

다음날, 삼 형제는 한양으로 출발하기 전 노자산에 올라 결의를 다지기로 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던 세 사람 앞에 웬 낯선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하얗고 길게 늘어진 수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젊은이들. 혹시 먹을 것이 없는가?”

첫째는 거지 노인이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들도 가지고 있는 식량이 넉넉지 않았지만, 막내는 선뜻 노인에게 먹을 것을 내주었다. 첫째와 둘째는 모른 척했다. 노인은 막내에게 말했다.

고맙군. 젊은이.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는가? 내가 몽돌 바닷가에 두고 온 것이 있다네. 용바위 제일 끝에 있는 땅에 묻어 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가져다주면 좋겠군.”

첫째는 반대했다. 갈 길이 멀다는 이유였다. 몽돌해변에 갔다가 다시 노자산으로 돌아오려면 반나절 이상이나 걸릴 거였다. 막내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노인이 마음에 걸립니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형님들 먼저 떠나시려면 그렇게 하시지요.”

그러자 둘째가 나섰다.

아니다. 우리끼리 어찌 먼저 떠나겠느냐? 형님 기왕 이렇게 된 거 하루만 더 있다 떠나시지요.”

첫째는 탐탁지 않았으나 동생들과 함께 떠나는 것이 나았다. 이것저것 큰형님으로서 심부름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첫째와 둘째는 일단 노자산에서 노인과 막내를 기다리며 쉬어 가기로 했다.

몽돌해변으로 내려온 막내는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늘도 역시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막내는 용바위가 있는 남쪽을 향해 계속 걸었다. 학동마을에서 해금강 쪽으로 바닷가 끝 지점쯤에 용머리를 닮은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그것을 용바위또는 용두암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그곳이 용궁으로 가는 수문장이 버티고 있는 입구라고 생각했다.

막내가 노인이 일러준 대로 땅을 파보니 커다란 나무 상자가 나왔다. 그것을 들고 다시 노자산을 향해 올랐다. 도착하니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노인은 막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구려 젊은이. 보아하니 형제들 같은데 어디 가는 길인가?”

막내는 그들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젊은이들이 아주 기특하군.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기술을 가르쳐주겠네. 하나는 무엇이든 훔쳐낼 수 있는 기술, 둘은 뭐든 다 맞히는 총 쏘는 기술, 셋은 뭐든 다 기워낼 수 있는 재봉기술. 선택해보게.”

첫째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장 훔치는 기술을 선택했다. 그리고 둘째는 총 쏘는 기술, 막내는 재봉기술을 선택했다. 노인은 그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고 떠났다.

명심할 것이 있네. 그 기술들은 꼭 필요한 곳에 좋은 일에만 써야 할 것이네.”

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노인과 헤어졌다.

삼형제는 부지런히 노자산 정상에서 기술을 연마했다. 일 년이 지나자 각자의 기술들을 완벽히 익혔다. 그래서 다시 마을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3.

학동마을로 돌아온 삼 형제는 다시 보는 바다가 반가웠다. 하지만 마을은 예전과 달랐다. 고기잡이배들로 북적여야 할 바닷가는 한산했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골목골목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우물가에 둘러앉아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대문들은 굳게 잠겨 있었고 찬바람만이 거리를 지나칠 뿐이었다. 첫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이상하다. 마을에 왜 이렇게 불길한 기운이 도는 거냐?”

그때 둘째가 벽에 붙은 방을 가리켰다.

형님, 이것 보십시오. 최 대감님 댁에서 붙인 모양입니다.”

방에는 용에게 잡혀간 외동딸을 구해오는 자에게 상을 주고 사위로 삼겠다는 내용이 씌어있었다. 그리고 외동딸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막내가 그림을 떼어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니 낭자가? 그럼 그 낭자가 최 대감님댁 외동딸이었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놀란 막내의 얼굴을 보고 둘째가 이유를 물었다. 막내는 낭자와 있었던 일들을 형들에게 말했다,

형님들, 우리들의 능력을 합쳐서 낭자를 구하러 갑시다.”

첫째는 꺼리는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겠느냐?”

둘째도 마찬가지 표정을 지었다. 막내는 형들에게 사정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상금은 형님들 다 가지십시오.”

그 말은 들은 첫째의 귀가 솔깃했다.

막내가 하도 부탁을 하니 한번 해보자꾸나, 둘째야.”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가 형제들을 반겨 주었다. 삼 형제는 낭자를 구하러 가겠다는 계획을 아버지께 전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통구민을 구해 주었다. 통구민이라 하는 것은 통나무를 뜻하는데 거제 지역에서 사용되어 온 전통 선박이었다.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들었기 때문에 통선이라고도 불렸다.

용이 아씨를 데리고 외도로 날아갔다. 내일 이 배를 타고 외도로 떠나거라.”

다음날, 그들은 드디어 바다 앞에 섰다. 파도는 잔잔했다. 저 멀리 그들의 목적지인 외도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서둘러 통구민을 타고 외도를 향해 노를 저었다. 막내는 입을 굳게 다물고 외도만을 향해 바라볼 뿐이었다.

낭자가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가 꼭 구해 주리다.’

반면 첫째는 내심 귀찮은 듯한 얼굴이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구하기만 한다면야 돈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뭐.’

둘째는 겁에 질렸다.

용이 우리 형제들을 해쳐서 크게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네.“

각자의 다른 생각들을 실은 채 통구민은 용을 향해 다가갔다.

드디어 통구민이 외도 앞에 다다랐다. 인적 없는 섬은 조용했다. 그들은 서둘러 낭자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한 동굴 안에 힘없이 앉아있는 낭자를 발견했다. 막내는 낭자에게 달려갔다.

낭자, 괜찮소? 내가 구하러 왔소.”

낭자는 막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꼼짝없이 앉아 죽는 줄로 알았는데 도령님이 오시다니요? 이게 꿈입니까?”

막내가 서둘러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낭자가 막았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지금 안에서 용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발소리에 잠이 깰 것입니다.”

아까부터 첫째는 낭자의 아름다운 외모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낭자의 말을 듣고 자신이 능력을 이용해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가 낭자를 향해 외쳤다.

낭자, 걱정 마시오. 사악한 용에게서 내가 낭자를 훔쳐 아니 구해 주리다.”

그런 다음 재빠르게 동굴로 잠입하여 낭자를 안고 나왔다. 막내와 낭자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낭자 괜찮으시오? 정말 다행이오.”

가만히 서 있던 둘째가 동굴 안에서 기척을 느끼고 서둘러 떠나자며 통구민으로 손짓했다. 네 사람은 서둘러 통구민을 향해 뛰어갔다. 삼 형제는 부지런히 노를 저어 학동마을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용도 잠에서 깼는지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통구민을 발견하고 날아왔다. 둘째가 총을 들고 용을 향해 쏘아댔다. 총알이 명중하여 용의 몸 여러 군데에 상처를 냈다. 힘을 잃긴 했지만, 용은 계속해서 따라왔다. 낭자까지 합세하여 노를 저어댔고 둘째는 총을 계속 쏘아댔다. 용은 힘이 빠졌는지 강한 파도를 일으키며 다시 외도를 향해 돌아갔다.

용을 물리쳤다는 기쁨도 잠시 용이 일으킨 파도에 통구민이 뒤집히고 부서졌다. 막내는 서둘러 낭자를 붙잡았다. 바다에서 태어나 수영을 즐겼던 삼 형제들인지라 강한 파도에도 쉽사리 휩쓸리지 않았다. 하지만 육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어 막막했다. 그때 막내가 큰 바늘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각난 통구민을 기워나갔다. 막내 덕분에 통구민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네 사람은 다시 통구민을 타고 학동마을로 돌아왔다.

 

4.

몽돌 바닷가에서 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최 대감과 마을 사람들은 통구민을 보며 환호했다. 최 대감이 달려가 딸을 부둥켜안았다.

딸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자네들 고생 많았네. 장한 젊은이들일세.”

삼 형제 역시 마중 나와 기다리던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삼 형제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저녁 학동마을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최 대감댁 넓은 앞마당에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 푸짐한 음식을 대접받았다. 최 대감은 삼 형제를 앞으로 불렀다.

내 약속대로 용감한 젊은이들에게 금전을 하사하겠네. 그리고 사위로 삼아야 하는데 세 명이군. 이를 어쩐다.”

막내가 낭자의 손을 잡고 최 대감에게 다가갔다.

저희는 오래전부터 혼인을 약조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첫째가 끼어들었다.

대감, 우리 셋이 구했으니 셋 모두에게 사위의 자격이 있는 줄 압니다.”

최 대감은 그 상황에 난감했다. 막내가 놀라 첫째를 향해 흥분하여 소리쳤다.

형님, 돈은 둘째 형님과 나눠 가지십시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첫째는 지지 않았다.

내 마음이 바뀐 걸 어떡하냐? 돈보다 낭자가 더 좋은걸.”

잔칫집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막내와 첫째가 난데없이 싸움판까지 벌였다. 둘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언성이 높아지고 급기야 몸싸움까지 해댔다. 마을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바람이 심하게 불어 닥쳐 호롱불이 꺼졌다. 뒤이어 더 큰 바람에 잔칫상들이 엎어졌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최대감도 깜짝 놀라 안절부절못했다.

갑자기 웬 바람인 게냐?”

학동 앞바다도 심상치 않았다. 파도가 높이 일면서 검푸른 물결이 바다를 뒤덮었다. 그리고 용바위에서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노한 용이 마을에 위해를 가하는 듯했다.

며칠 동안 바다는 성이 났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파도가 바다를 삼키는 듯했다. 고기잡이배들은 나가지도 못하고 고기잡이 나갔던 배들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남겨진 가족들은 눈물만 흘려댔다. 날씨는 점점 나빠져 갔다. 이번에는 비바람까지 휘몰아쳤다. 마을의 초가지붕들이 날아가고 다 익은 벼와 과일나무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김 영감은 이게 다 성난 용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용바위에 얽힌 전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바닷속에 사는 용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용왕은 옥황상제에게 부탁하여 두 아들을 하늘의 용이 될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았다. 용왕이 두 아들에게 일렀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하늘의 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 여의주를 입에 물고 무지개다리를 타고 승천하도록 하여라"

하고 여의주 두 개를 꺼내 각각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욕심 많은 형이 아침 일찍 몰래 동생의 여의주까지 챙겨 입에 물었다. 하지만 형이 무지개를 타자 자꾸 휘청거렸다. 여의주 두 개의 무게로는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르고 하늘로 가기 위해 허우적거리다가 용왕에게 들키고 말았다.

"네 이놈. 그런 욕심으로 하늘의 용이 될 수 있겠느냐? 죄를 뉘우칠 때까지 벌을 내리겠노라."

용왕은 동생을 무지개에 태워 하늘로 보내고 형은 학동 바닷가에 바위로 변하게 했다. 그리고 용궁으로 들어오는 길을 지켜보도록 명령했다. 형이 죄를 뉘우치고 욕심 없는 마음이 될 때야 용바위의 벌은 풀어지고 승천할 수 있다고 한다.

 

전설을 다 들려준 김 영감이 덧붙였다.

그러니까 용을 승천시키기만 하면 이 변고도 사라질걸세. 그러려면 용궁으로 가서 용왕이 가져간 용의 여의주를 되찾아주면 되네

김 영감의 말을 듣고 삼 형제의 아버지는 세 사람에게 일렀다.

너희 셋 중에 용의 여의주를 되찾아주는 사람이 최 대감댁 사위가 되는 것으로 하자. 알겠느냐?”

둘째는 용궁으로 가는 길이 무섭다며 거절했다. 이제 첫째와 막내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누가 먼저 용궁에 가느냐가 문제였다. 아버지는 첫째가 나이가 많으니 일단 첫째에게 먼저 다녀오라 일렀다.

 

5.

아침부터 용바위 앞 바닷가에는 용왕제 준비로 한창이었다. 꽹과리 소리, 북소리, 장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녀자들은 제사상에 올릴 음식들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붉은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무당은 굿을 하기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첫째가 용궁으로 들어가는 날이기도 했다. 징 소리에 맞춰 첫째가 용바위로 걸어갔다. 용바위 끝 긴 통로로 걸어가면 바닷물이 우물처럼 고여 있는 곳이 있었다. 수심이 꽤 깊은 곳이어서 어린아이들은 함부로 가지 못하게 하는 곳이다. 첫째는 그 우물 같은 바닷물 속으로 잠수했다.

한참을 헤엄쳐 들어가니 어느 순간 숨쉬기가 편해졌다. 바닥까지 내려가니 이제는 걸음을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방에는 아름다운 꽃들과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물속이었지만 꽃향기가 느껴졌다. 가는 길목마다 아름다운 여인들과 잘생긴 청년들이 한가로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바닷속 깊은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게 걷고 걸어 첫째는 용궁 앞에 도착했다. 용궁은 임금님이 사는 궁궐만큼이나 웅장하고 화려했다. 용궁으로 들어가는 수문장 앞에 한 마리 용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첫째가 그 용에게 다가갔다. 용은 첫째를 수상하다는 듯이 위아래를 훑어봤다.

용궁에는 무슨 일이냐?”

첫째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바로 수문장 용님을 위해서죠. 용님의 잃어버린 여의주를 찾아오겠습니다. 그걸 물고 승천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마을의 변고도 멈춰주십시오.”

첫째의 말을 들은 용이 코웃음 쳤다.

, 네 주제에 무슨 수로. 용궁의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데. 거짓말 마라.”

첫째는 용에게 자신의 능력을 설명했다. 용은 미심쩍긴 했지만 믿는다고 나쁠 것은 없었다. 용은 첫째에게 용왕의 방 위치와 여의주가 놓인 장롱을 알려주었다. 첫째는 조용히 용궁으로 들어가 염탐했다. 그리고 용왕의 방에 침입해 몰래 여의주를 훔쳐냈다.

용궁 입구로 돌아온 첫째가 의기양양하게 여의주를 용에게 내밀었다. 낮잠을 자고 있던 용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요놈, 아주 신통한 재주가 있구나. 이제 하늘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첫째가 용에게 말했다.

어서 우리 마을의 파도를 멈춰주십시오.”

그러나 용은 고개를 저었다.

, 그러고 보니 그때 외도에서 본 놈이구나. 네가 내게 총을 쏘아댔느냐?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사흘 내내 앓아누웠다, 이놈.”

첫째는 총을 쏜 사람은 자신이 아니며, 그때 일이야 어찌 되었건 여의주를 구해 주었으니 어서 변고를 멈춰달라 사정했다. 하지만 용은 거절했다.

싫다 이놈아. 나는 하늘로 올라 갈 테니 너희들 알아서 하거라. 그럼.”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었다. 곧이어 무지개도 활짝 펼쳐졌다. 용은 서둘러 무지개다리로 올라갔다. 하지만 무지개다리가 휘청거렸다. 용의 몸도 함께 흔들렸다. 급기야 다리에서 튕겨 나와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러면서 여의주도 산산조각 깨져 버렸다.

아이고, 내 여의주. 이를 어쩌나. 난 영영 하늘로 올라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어.”

용은 그 자리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첫째가 씩씩거리며 용에게 한마디 했다.

그러게, 약속을 지켜주셔서 착한 일을 했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들은 용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야 이놈아. 감히 누구한테 훈계를. 너희 마을을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겠다.”

첫째는 살벌하게 다가오는 용을 피해 마을로 다시 도망쳤다.

잠시 뒤 용궁 문을 통해 용왕이 걸어 나왔다,

이놈, 여의주를 훔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여의주가 있어도 승천하지 못한다고 일렀거늘. 이제는 여의주까지 깨뜨리다니. 너는 평생토록 반성하면서 바닷속 수문장으로만 살 거라

용왕은 조각난 여의주를 주워 용궁으로 돌아갔다. 용은 그 자리에서 크게 울부짖었다.

 

 

6.

바닷가에서 제를 올리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파도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아니 정성 들여 제까지 올리는데 무슨 일이람.”

첫째가 젖은 몸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육지로 걸어 나왔다. 이내 지쳤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용궁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시름에 잠겼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잠자코 있던 막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제가 용궁에 다녀오겠습니다.”

첫째는 막내를 말렸다.

우리 힘으로는 이겨 낼 수가 없다. 용이 얼마나 교활한데. 내가 그냥 사위 자리 포기하겠다.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지 몰라.”

하지만 막내는 굽히지 않았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당당하게 맞서 싸워서 이 마을을 구하고 낭자와 혼례식을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막내도 바닷속으로 잠수했다.

용궁 앞에 도착한 막내는 수문장 용 앞에 섰다. 용은 여의주를 잃고 맥없이 앉아있었다. 막내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설명하며 조각난 여의주를 기워 본래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말에 용이 벌떡 일어섰다. 때를 놓치지 않고 막내가 말을 했다.

대신 제가 여의주를 가져다주면 이번에는 확실히 우리 마을의 변고를 멈춰주셔야 합니다,”

그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여의주만 가지고 오너라. 그런데 훔치는 재주도 없는데 어찌 여의주를 훔쳐 올 수 있겠느냐?”

저는 훔치지 않습니다. 용왕님께 가서 공손하게 부탁하고 가져오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용은 주춤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막내를 믿어 보기로 했다.

막내는 용궁으로 들어가 용왕님을 뵙기 청했다. 용왕이 손수 궁궐마당으로 나와 막내를 맞이했다. 용왕의 얼굴을 본 막내가 깜짝 놀랐다. 노자산에서 수련을 전수해 준 그 노인이었다.

오느라 고생했구나. 마을을 구하러 왔구나. 내 너희들의 능력을 좋은 곳에 쓰라고 했거늘. 첫째 녀석은 쯧쯧.”

형님 일은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형님도 수문장 용에게 크게 당한 터라 반성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용왕님, 여의주를 주시면 제가 기워내서 용에게 전하겠습니다. 그 용이 승천해야만 마을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용왕은 고개를 저었다.

여의주만으로는 안되느니라. 그 녀석이 마음을 착하게 먹어야 가능하다. 아직도 그놈 마음속에는 욕심이 가득 차 있어.”

제가 잘 설득해보겠습니다. 저를 믿고 여의주를 내어 주십시오.”

용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의주가 든 상자를 내어 주었다. 막내는 그 상자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용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네가 용바위까지 가서 내게 가져다주었던 그 상자다. 그 상자 안에 여의주가 들어있다. 그때 네가 아니었으면 영영 못 찾을 뻔했다. 자 가서 너의 힘으로 마을을 구해 보거라. 자식이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막내는 용왕에게 인사하고 다시 용궁 문 앞으로 돌아왔다. 용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가져왔느냐? 이리 내놓거라.”

막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먼저 마을의 변고를 멈추어 주시오.”

용은 순순히 그리 했다. 밖에서 용왕제를 지내던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잦아드는 바람에 서로 안도했다. 용은 계속 재촉했지만, 막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용왕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마음을 먹어야 승천하실 수 있다고요.”

그래, 이제 나 착하게 살 것이다. 됐지? 어서 내놓거라.”

보여주십시오.”

? 뭘 보여줘?”

당돌한 막내의 말에 용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으나 승천을 위해 참았다. 막내는 한참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꼬리를 내놓으시지요.”

그 말을 들은 용은 당황했다. 용의 꼬리는 영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바닷속 생물들이 적은 양만 먹어도 살이 금방 오르고 새끼들도 번창할 수 있었다.

, 그건 안된다. 소중한 내 꼬리를 어찌. 볼품없는 용이 되고 말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꼬리를 자르면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

꼬리는 또 자랄 것입니다. 정 그러시다면 여의주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겠습니다. 이 여의주를 기워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용은 허둥지둥 막내를 붙잡았다. 그리고 알겠다고 대답하며 스스로 꼬리를 잘랐다.

아이쿠야. 총을 수백 발 맞은 것보다 훨씬 더 아프구나.”

막내는 그제야 여의주를 건넸다.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은 눈을 감고 천천히 무지개다리로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무지개다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하하하. 난다 날아. 이번에는 진짜 승천하는구나. 고맙구나. 앞으로 너희 마을에는 좋은 일만 가득 할 것이야.”

어느새 용왕이 나타나 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스로 꼬리를 자르다니. 대단한 희생을 했구나. 잘했다, 아들아. 하늘나라로 올라가 더 넓은 세계에서 큰일을 하거라.”

용은 용왕에게 인사하며 하늘로 올라갔다. 막내도 용왕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수고 많았다. 육지에 가서도 삼 형제들이 힘을 합쳐 좋은 곳에 재주를 쓰도록 하거라.”

 

막내가 다시 바닷가로 올라오니 사람들은 풍물놀이에 맞춰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맑게 갠 파란 하늘에서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도 잔잔해서 어느덧 고기잡이배들이 하나둘 바다로 나가기 시작했다. 돌아오지 못했던 배들도 차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와 형님들이 막내에게 다가가 반겨주었다. 첫째는 막내에게 사과했다.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미안하다, 아우야.”

막내는 첫째의 손을 잡고 용왕님의 충고를 알려 주었다. 학동마을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용의 꼬리를 먹은 물고기 덕분인지 고기잡이배들은 실하고 싱싱한 물고기들을 가득 싣고 들어왔다.

삼 형제들을 의좋은 형제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재주로 마을 일을 도우며 살았다. 그리고 최 대감댁 낭자와 막내는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몽돌 해변가에서 혼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