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관광모노레일

거제 포로수용소와 고자산치 전설이야기

거제관광개발공사 2020. 6. 15. 16:42

[스토리텔링 공모전 우수상 허원영 씨 작품]

 

거제 포로수용소와 고자산치 전설이야기

 

거제면 명진리에서 *1)계룡산 능선을 타고 올라 상동동으로 가는 이 고개는 경사도가 급하고 산림이 울창하게 우거져 10km나 되는 험준한 산길를 고자산치라고 부른다. 그 옛날 어떤 이는 산세가 불화()자를 닮은 험준한 산이라 부역을 하기 싫어 이 고개에서 스스로 거세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화()자가 남자의 성기를 닮아서, 고자 고개라 불려졌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고자 산 고갯길에 연유한 전설로 윤리, 도덕의 대표적인 애환이며 거제사람들의 근친상관에 대한 가차 없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때는 1592, 임진왜란으로 고현성이 함락되고 17년 후인 현종 4년에 거제 현아를 고현에서 고자산을 넘어 거제 (거제면)로 옮겨 온 후부터 고현과 거제 사이는 이 고개가 가파르지만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큰 길이 되었다. 그로부터 25년 후인 1688년 숙종 14년에 현령 김대기가 계룡산 북쪽 중허리를 둘러 가는 김현령재 고갯길을 개설할 때까지 96년간 신읍 거제와 구읍 고현 사이의 중앙 도로의 역할을 하며 사람의 내왕이 많았던 곳이 고자산재다.

이때에 어느 날 거제에서 의좋게 잘살고 있던 기성 반씨(岐城潘氏)의 반명돌(가명)이란 오라비와 여동생 순이(가명)는 아주(지금의 아주동)에 있는 아주신씨(鵝洲申氏) 외갓댁에 가게 되었다. 때는 초여름의 장마철로 고자산 고개 중턱을 오르는 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도롱이도 없이 비를 맞으며 열심히 고개를 올라가던 중 계룡산 고개 정상에서 오빠 반명돌은 가픈숨을 쉬어가기 위해 바위에 걸터앉아 동생을 기다렸다. 보폭이 짧은 여동생이 잠시 뒤 비를 맞고 올라왔는데 오빠 반명돌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얇은 모시 저고리가 비에 젖어 어느새 처녀로 성장한 여동생의 몸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활짝 핀 목련꽃 같은 여동생의 모습에 오빠는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욕망으로 머리가 아득해졌다. 반듯한 집안의 청년으로 자란 반명돌에게 있어 이런 일은 상상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끓어오르는 욕정을 가까스로 숨기며 여동생에게 고개를 먼저 내려갈 것을 권유했다. 여동생이 내려가고 혼자 남은 명돌은 비록 생각으로 저지른 불륜이고 패륜이지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명돌은 주변에 있던 뾰족한 나무 꼬챙이를 찾아 고환을 찔렀다. 많은 피를 흘린 명돌은 결국 쓰러져서 죽게 되었다.

여동생 순이는 얼마쯤 내려가다 돌아보니 오빠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온 길을 되돌아 가보니 오빠가 보이지 않았다. 오빠를 찾아 숲속을 헤매는데 한 귀퉁이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오빠가 보였다. 순이는 뛰어가 오빠를 바로 눕혔으나 이미 죽어 있었다. 오빠가 죽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한 순이는 큰 소리로 목을 놓아 울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계룡산 고개를 고자산치(睾刺山峙)라 부르게 되었다. 뜻풀이를 하면 불알을 꼬챙이로 찌른 언덕이라는 뜻이다.

슬픔에 젖어 있던 순이는 혼자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동물들이 덤비지 못하게 흙을 덮어 오빠를 묻고는 외갓집이 있는 아주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 내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며 걷다 보니 무서운 줄도 모르고 산을 넘어갔다. 이 길은 양정에서 아주로 넘어가는 옥녀봉 아래의 고개로 울음이재’(울면서 넘어간 고개)라 불리며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불려지고 있다. 이처럼 가슴 아 픈 사연으로 인해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 되면 거제의 젊은 청춘 남녀들은 이 고개를 넘어가지 않고 일부러 먼 길을 둘러서 다녔고 한다.

이 이야기는 거제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이며 위치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계룡산 통신대 주변의 고개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유적공원 내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 가다보면 통신대가 보이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남해의 푸른 바다, 수많은 다도해와 어우러져 절 경을 이룬다. 가을에 고자산치에서 바라보는 억새는 신비롭고 장관을 이룬다. 거제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누구라도 한국전쟁 당시 포로 173천여 명을 수용한,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에 직접 와서 전쟁의 무서움과 자주 국방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더불어 슬픈 전설이 담겨있는 계룡산 고자산치에서 거제의 풍광과 경치를 즐겨보시길 바란다.

거제는 예로부터 옥황상제의 딸 옥녀가 내려앉은 곳이라 선녀의 치마폭이라는 뜻으로 상둔(8폭 치마폭)이라 불렀으며 정감록에는 나라를 크게 세 번을 구하는 상서로운 곳이라고 전해 온다. 첫 번째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 거제 앞바다를 거점으로 하여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선을 대파하여 나라를 구했다. 두 번째는 6.25 한국전쟁 당시 173천여 명의 포로를 거제도에 수용해 먹여 살린 것은 인류역사에 빼 놓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거제 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크게 구할지는 알 수 없지만,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지맥이 태백산, 소백산, 지리산을 거쳐 상서로운 기운이 거제도에 맺혀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 33백 개의 섬 중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 이곳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두 분이 나셨다는 것만으로도 거제는 상서로운 땅이다.

특히 현재 집권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께서 함경남도 흥남에서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거제도에 정착을 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이 곳은 거제시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곳이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 속에서 승선 정원이 60명이고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어 13명의 여분밖에 없는 배에 군용무기를 모두 버리고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로 내려온 메러디스 빅토리 호. 거제는 전쟁 속 휴먼 스토리와 역사적 사실이라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과 연계하여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구전 이야기를 멋지게 스토리텔링하여 관광 상품 및 코스로 개발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거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는 일이다.

거제포로수용소와 연계한 코스- (내방객들에게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에서 내려 등산로를 걷다가 통신소로 가는 길 입구에 고자산치, 울음이재를 가는 이정표를 달아서 연계를 하고 모노레일 안에서 방송을 통한 전설 이야기도 들려주기)

1) 계룡산: 머리는 닭의 머리를 닮고 몸통은 용을 닮았다하여 계룡산이라 불려 짐. 2) 도롱이: 짚이나 띠 따위를 엮어 만든 옛 우비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