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대첩기념공원

23전 23승 전승신화의 시발점 옥포대첩

거제관광개발공사 2020. 11. 18. 13:59

23전 전승(全勝) 신화의 시발점 옥포대첩을 기리는

옥포대첩기념공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세계 해전(海戰)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2323승의 전무후무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의 함대가 전승 신화를 이룰 수 있는 배경에는 당시 수군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혁신적인 신개념의 수군 함대를 만들고, 신기에 가까운 전술과 전략을 구사했기에 가능했다.

적절한 지형지물 이용과 무기 개량,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군사들에게 심어줌으로써 드높은 사기를 자랑하는 완벽한 조선 수군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략과 정보력, 군사와 백성들의 절대적인 신뢰는 전승(全勝)의 든든한 밑천이 되었다.

159257일 왜군 전함 26척을 격파한 옥포대첩은 마지막 해전인 노량대첩까지 2323승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큰 승전이었다.

옥포대첩기념공원 기념관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 옥포대첩 전개

 

1592413일 부산 앞바다를 뒤덮었던 왜군은 불과 18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 국토의 절반을 난도질했다.

전쟁 초기, 조선은 왜군에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100년에 걸친 국내 통일 전쟁을 끝낸 뒤 이웃 나라 공격을 차근차근 준비해온 침략자였고, 조선은 1392년 개국 이래 200년 동안 전쟁 없이 평화를 누려온 무방비 상태였다. 선조는 임진왜란 발발 17일 만에 도성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름으로써 자신과 조정이 전쟁에 대해 거의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와중에도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이순신 장군의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1592430일자 장계다.

이순신은 '적이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은 그들을 해전에서 막지 못하고 뭍에 오르도록 두었기 때문'이라면서 '부산과 동래의 수군 장수들이 배를 잘 정비한 뒤 바다에 가득 진을 벌여 위세를 보이면서 상황과 병법에 따라 알맞게 나아가고 물러나 적의 상륙을 막았으면 나라를 욕되게 하는 환란이 오늘 같은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바다에서 적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159254,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인 판옥선 24, 보조 군선인 협선 15, 어선인 포작선 46척을 거느리고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경상도 바다를 향해 출발한다.

다음 날인 55일에 당포(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바다에 배를 띄우고 숙박했다. 사흘째인 56일 아침 원균 부대가 당포에 도착했다. 이순신과 원균 사이에는 이곳에서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

원균 휘하의 경상도 수군은 판옥선 4척과 협선 2척이 전부였다. 같은 수사인 이순신의 전라 좌수영 수군이 판옥선 24, 협선 15, 포작선 46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하면 원균이 이끌고 온 병력은 수사의 군대 규모가 아니라 첨사나 만호의 군대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전라 좌수영 전함이 경상도 바다로 나아가고 있던 그 무렵, 이순신을 비롯한 수군 장수들은 한양이 적에게 넘어간 줄 알지 못했다. 국왕 선조가 이미 개성을 지나 평양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물론 몰랐다. 그들은 왜적이 지금 한양을 향해 진격 중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가등청정이 한양에 들어간 날이자 전라 좌수군이 출발하기 바로 전날인 53일 정운이 이순신에게 "왜적이 점점 서울 가까이 다가가고 있으니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며 빨리 전함을 몰고 경상도 바다로 나아가자고 재촉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선조가 평양으로 들어간 57일 그날,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원균의 연합 수군은 정오 무렵 옥포에 닿았다. 옥포에는 일본 전함 50여 척이 정박해 있었다. 이순신과 그 수하 장졸들은 일본군과 최초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선봉을 맡아 달려 나갔던 사도 첨사 김완, 여도 권관, 김인영 등이 신기전을 쏘아 적선 발견 신호를 보내왔다. 이순신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옥포 포구로 들어갔다. 옥포 선창에는 도도 다카토라가 이끄는 50여 척의 왜선들이 여기저기 정박해 있었다. 왜군들은 배에서 내려 노략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왜의 전함들은 한마디로 요란했다. 큰 배는 갖가지 무늬로 수를 놓은 비단 휘장을 사방에 둘렀고, 휘장 주변에 대나무 막대기를 꽂고 있었다. 또 펄럭이는 천과 움직이는 등처럼 생긴 붉고 흰 깃발들을 어지럽게 많이 매달아 놓아 눈이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군도 왜적과 처음 치르는 전투인지라 군사들이 겁을 먹고 망설이자 후부장 정운이 북을 치면서 가장 앞서 적을 향해 배를 몰아세웠다. 그러자 다른 배들도 서로 뒤지 않으려고 앞다퉈 왜군을 공격했다.(이형석<임진 전란사>)

왜적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아군 전함들을 보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우왕좌왕했다. 적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제각각 노를 저어 산기슭 아래 해안선을 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감히 바다 가운데로 달려 나와 아군에 대적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조선 수군의 기습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적선 중 6척이 그나마 조총을 쏘면서 저항했지만, 사정거리가 100m 정도에 지나지 않아 200m를 훌쩍 넘는 조선 대포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날 해전에서 36(판옥선 24, 협선 15)의 전라 수군이 적선 21척을, 6(판옥선 4, 협선 2)의 경상 수군이 적선 5척을 격파했다.

이것이 임진왜란 개전 이후 개전 이후 계속된 패전으로 희망조차 사라질 무렵 첫 승전보를 울린 거제의 옥포대첩이다. 불패의 성웅 이순신 장군을 만든 신화가 시작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선 수군은 옥포 앞바다에서 26, 이후 합포와 적진포에서 16척 등의 왜선을 격침시켜 왜군이 호남 곡창지대로 진출하는 것을 막고 서해를 통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 옥포해전은 조선 수군이 왜() 수군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해 준 일전이었고, 양측의 수군 전력이 직접 충돌한 첫 전투에서의 대승은 곧 조선 수군의 전력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 전투였다.

#옥포대첩기념공원

 

옥포대첩기념공원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이순신 장군이 거둔 첫 승전인 옥포대첩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옥포만이 내려다보이는 거제시 옥포동 산 1번지 81,863부지 위에 19965월 조성했다. 공원은 기념관과 30m 높이의 옥포대첩기념탑, 참배단, 옥포루, 이순신 장군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포대첩기념탑과 옥포정은 본래 옥포조선소(현 대우조선해양)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1973년 옥포조선소가 기공됨에 따라 1974년 옥포대첩기념탑과 옥포정을 조선소 부근 거제시 아주동 탑곡 마을로 옮겨지었다. 그러나 부지가 좁고 위치도 적합하지 않아 다시 이곳 옥포동에 부지를 확보하여 옥포대첩기념공원을 조성하면서 기념탑과 누각을 세웠다.

지난 19911220일 기념공원 사업을 시작하여 1996515일 준공했고, 622일에 옥포대첩기념공원이 개원됐다. 1998422일에는 이순신 장군 사당 건립공사를 시작하여 199956일에 준공했고, 20091130일에는 거북선 및 판옥선 모형 제작과 설치공사를 완공했다.

옥포대첩기념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기념관에는 옥포대첩의 역사적 기록물과 당시 수군의 복색과 갑옷, 투구, 총통, 철환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판옥선, 거북선 단면도, 당시의 전투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기념관을 나와 왼쪽의 홍살문을 지나면 좌우에 거북선과 판옥선 모형이 전시되어 있고, 높은 계단 위에 경충문(景忠門)이 있다. 이 문을 지나면 거충사(巨忠祠)가 있고, 효충사(效忠祠) 편액을 단 사당이 나타난다. 효충사(效忠祠)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거충사(巨忠祠)에는 이순신을 비롯한 23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효충사를 참배하고 나면 사당을 둘러싼 담장의 오른쪽에 작은 문이 보인다. 그 문을 지나면 옥포루, 기념탑, 참배단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길의 처음은 은행나무가 있고 솔숲 오솔길이다. 100m가량 느긋이 솔향에 취하고 나면 포장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길이 두 갈래인데,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기념관 앞 주차장으로 가게 되고 왼쪽으로 가면 기념탑, 참배단, 옥포루로 가는 길이다. 초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가 발걸음의 풍미를 더 해 준다.

참배단

언덕을 오르면 옥포루가 짙푸른 옥포 앞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누각 2층에 올라 옥포 바다를 바라보면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첫 승전의 함성을 느껴볼 수 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이 깃발을 펄럭이며, 거쿨진 기개로 바다를 가르는 우리 수군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옥포루를 내려와 잠시 계단을 오르면 '옥포대첩기념탑' 우뚝 솟아 있다. 30m 높이를 자랑하는 기골이 장대한 탑이다. 기념탑은 학익진, 전선, 태산 모양을 형상화하여 진취적 기상을 표현해 놓았다. 기념탑 뒤에 참배단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영기(靈氣)가 느껴진다.

옥포대첩기념공원의 마지막 코스는 참배단이다. 참배단 벽에는 '勿令妄動(물령망동) 靜重如山(정중여산)'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물론 한글로 뜻도 새겨놓았다. 159257일 옥포 앞바다로 진군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했던 말이다.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옥포대첩기념공원은 역사기념전시관이기도 하지만 거제시민과 관광객 누구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끼면서 산책과 옥포만을 조망하면서 삶의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가져보자.

옥포대첩기념공원은 매주 월요일이 휴관이며, 201712월부터 입장료를 없애고 무료 개방하고 있다. 만약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 날이 휴관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방문하면 된다. 관람 문의 전화는 055)639-8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