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해전공원

칠천량해전공원Ⅰ

거제관광개발공사 2013. 11. 26. 16:53

칠천량해전공원(Ⅰ) 

 

1. 역사의 메아리

 

(1)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선조 31년)까지 한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조선과 일본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되었으며, 일본이 침략을 개시한 1592년이 임진년이기 때문에 임진왜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일본이 제 2차 침략을 감행한 1597년(선조 30년)부터의 전쟁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 칠천량 해전

 

칠천량 해전은 1597년 7월 16일(음력) 새벽,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도도 다카토라 등이 지휘하는 일본 수군에 의해 칠천도 앞바다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한 사건입니다. 이 패배는 임진왜란 내내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조선 수군이 처음 겪는 패배였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일본군은 거칠 것 없이 한반도 전역으로 진격하게 되었으며, 조선 민중은 일본군이 저지르는 학살과 약탈 등 온갖 만행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2. 기억의 메아리

 

(1) 조선 수군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왜구의 침략을 겪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수군을 강화시켜 바다의 경비를 맡게 했습니다. 조선 8도에 수군을 지휘하는 수군절도사를 두었으며, 특히 일본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에는 특별히 좌, 우 2명씩의 수군절도사를 두었습니다. 임진왜란 중에는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을 모두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사가 새로 만들어집니다. 나머지 도의 수군은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사는 사실상 조선의 모든 수군을 지휘하는 직책이었습니다.

    

(2) 판옥선

 

조선 중기 왜구의 침략을 방비하는 과정에서 조선 조정은 기존의 조선 전함이 너무 느려 왜구의 침략을 막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 크기와 더욱 빠른 빠르기를 겸비한 전선을 개발하는데 그것이 판옥선입니다.

판옥선은 1555년(명종 10년)에 탄생하였으며, 높은 2층 구조였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판옥선 갑판으로 기어오르려는 적군을 조선 수군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유리하게 싸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노를 젓는 격군은 갑판 아래의 1층에서 적군의 위협을 받지 않으며 안전하게 노를 저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갑판 중앙에는 지휘소인 누각이 세워져, 지휘관이 높은 위치에서 멀리 내다보며 지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판옥선은 임진왜란의 조선 수군 주력 전함으로 맹활약을 하게 됩니다.

 

 

(3) 판옥선 위에서의 조선 수군 편제

 

- 선장(船將) : 판옥선 1척을 지휘하는 수군 장수입니다. 보통 첨절제사나 만호와 같은 해당 지역의 수군 지휘관이 선장이 되었습니다.

- 방포장과 방포진무 : 화약무기를 다루는 역할입니다.

- 사부 : ‘사군’, 또는 ‘사수’라고도 합니다. 활쏘기를 맡았으며 근접전에 대비하여 허리에 칼을 찼습니다.

- 격군 : ‘노군’ 또는 ‘능노군’이라고도 합니다. 판옥선의 조선 수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보통 4명의 격군이 노 하나를 저어서 배를 움직이며, 판옥선은 대부분 좌우에 8개씩의 노를 두고 있었으므로, 일반적인 경우 판옥선 한 척당 격군은 64명 정도였습니다.

- 사공과 무상 : 갑판 위에서 항해와 관련된 일을 맡았습니다. 키, 돛대, 닻 등을 다룹니다.

 

(4) 조선 수군의 무기

 

조선 수군은 지금의 대포와 비교할 수 있는 위력적인 화약무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중 널리 알려진 것으로 천자총통·지자총통·현자총통 등을 꼽을 수 있으며, 대장군전· 장군전· 차대전 등과 같이 길고 두꺼운 총통용 화살로 적선을 깨뜨리는 전술이 주로 쓰였습니다.

통나무처럼 생긴 총통용 화살들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와 일본 전선을 깨뜨리는 모습은 조선에 쳐들어 온 일본군에게나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군에게나 난생 처음 보는 충격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일본 수군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으나 히데요시는 오히려 일본 수군 장수들이 싸움을 하기 싫어 거짓말을 한다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조선 수군은 기본적으로 모두 칼을 지녔지만 주력무기는 활과 화살이었습니다. 조선의 활, 특히 흑각궁은 당시 최고의 탄성을 자랑하던 물소뿔을 핵심 재료로 해서 만들어졌는데, 조선에서는 물소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서 중국 남부지방이나 동남아시아의 물소뿔을 수입하여 흑각궁을 만들었습니다.

화살 중 편전은 길이가 30cm 가량밖에 되지 않는 짧은 화살입니다. 길이가 짧기 때문에 ‘통아’라고 불리는 대롱에 넣어서 쏘았습니다. 편전은 짧고 가벼워 속도가 빨라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적군의 눈에는 활에 걸쳐진 통아만 보이기 때문에 편전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편전의 사거리는 450m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일본인들은 중국의 창법, 일본의 조총과 함께 조선의 편전을 천하제일로 꼽았다고 합니다.

 

일본 수군 역시 기본적으로 모두 칼(일본도)을 지녔습니다. 제일 많이 쓰인 무기는 조총이었습니다. 그 외에 대형 조총 격인 오오쓰쓰나, 특이하게 긴 모양인 일본 장궁 등이 쓰였습니다.

    

 

 

(5) 조선 수군의 고된 일상

 

조선 수군은 천하게 여겨지던 조선시대의 7가지 역인 칠반천역 중 하나였습니다. 신분적으로는 천인이 아닌 양인(良人)이었지만 하는 일이 너무 고되어 다른 양인들로부터 천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수군은 목숨을 내걸고 적과 싸워야 했으며, 1년 중 반년 정도를 바다 위에서 보내야 했고, 전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많은 인원이 모여 생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염병이 돌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또한 전사하여 시신을 찾게 되지 못할 경우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조선 수군에서는 종종 탈영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